[문화 컬렉션] 마르크 샤갈 대표작 탐구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마르크 샤갈은 가장 사랑받는 20세기 화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이었고, 스스로 이방인이라 생각하며 살아갔다. 그도 그럴 것이 미술 공부를 위해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도중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그는 러시아로 귀국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가 된 러시아에서 예술 탄압이 있어 다시 파리로 가고, 그 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미국으로 망명을 갔다가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에 정착한다. 그렇게 여러 나라를 전전하면서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핍박을 경험하기도 했다.
“사는 동안 나는 내가 나 자신이 아닌 어느 누군가가 아닐까, 또 내가 태어난 곳도 하늘과 땅 사이의 어디쯤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종종 가졌다. 이를테면, 이 세상은 나에게 광대한 사막 같은 곳이었고, 나는 그곳을 헤매는 호롱불 같았다.” 샤갈의 표현에 의하면 그의 방랑자적 정체성은 스스로도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의 발 대부분이 공중에 떠 있다. 이러한 배경이 있기에 샤갈의 작품에서 그리움의 정서가 묻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 묻어 있는 그리움은 때로는 자유로움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샤갈이 혹독한 생활을 했으리라 추측되지만, 그의 그림을 본 관람객은 서정적이고 따뜻한 인상을 경험한다. 그림에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마을
<나와 마을>은 샤갈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 중 하나로,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아 온 작품이다. 샤갈이 24세의 젊은 나이 때 고향인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서 그린 작품이다. 그림을 보면 우측에 초록색 얼굴의 ‘나’와 좌측의 염소가 서로 마주 보며 미소 짓고 있고, 둘 다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다. ‘나’는 반짝이는 나무를 들고 있는데, 성경에 나오는 생명나무 혹은 떨기나무라는 해석이 있다. 그에게 신앙이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는 지점이다. 또한 큰 염소의 얼굴에는 작게 염소의 젖을 짜는 여인이 그려져 있고, 뒤에는 마을이 보인다. 이러한 풍경이 그림을 목가적이면서 환상적으로 보이게 한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의 정서가 잘 나타나 있는 지점이다.

생일 <생일>은 샤갈이 연인이었던 벨라와 결혼하기 열흘 전에 그린 그림이다. 샤갈이 “그림은 내 손으로 그리지만 생각하는 머리는 벨라”라고 말했을 정도로 벨라는 샤갈에게 평생의 뮤즈였다. 이 그림의 제목도 벨라가 지어주었다. 방랑자 같았던 샤갈에게 다가온 운명적 만남은 그림처럼 꿈만 같았을 것이다. 샤갈이 자신과 벨라를 초현실적 표현으로 그렸지만, 도리어 그에게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에서 샤갈은 공중에 떠 있고, 벨라의 한 발은 땅을 디디고 있다. 자신을 이방인으로 여겼던 샤갈에게 벨라는 현실을 디디게 하는 중요한 사람이자 사랑이었을 것이다.

하얀 십자가 처형 샤갈은 “성경은 물감이 담긴 그릇과도 같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의 작품 세계에서 성경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는 성경 속 내용을 모티브로 상당수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얀 십자가 처형> 또한 그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발발 한 해전에 완성되어, 전쟁이 발발하기 전의 불안한 상황을 반영하였다. 샤갈의 그림 대부분이 강렬한 색채로 그려진 데에 반해 이 그림은 색감이 절제되어 어둡고 침울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예수의 왼편에 빨간 깃발을 들고 어디론가 돌진하는 무리는 소비에트 탄압을, 우편에는 나치 탄압을 나타내며 당시의 암담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하얀 빛깔의 예수와 십자가를 통해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의 십자가 사랑만이 소망이라는 메시지와 그 사랑이 나타나길 바라는 샤갈의 염원을 느낄 수 있다.
권대식 기자 • intruthinlif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