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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기업가, 헌신된 신앙인 다이히만


필자가 독일에서 매월 한 번씩 조찬과 성경공부를 겸한 목회자 기도모임에 참석할 때면, 모임 장소인 목사관의 입구부터 이층 계단까지 신발로 가득한 것을 보며 늘 드는 생각이 있었다. 목사관에 사는 사람들이 걷기용, 달리기용, 잔디밭용, 실내용 등 다양한 맞춤용 신발을 가족 단위로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 가족은 필수적인 신발 몇 켤레로 생활하였기에 가족의 처지가 함께 떠오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의 자존감을 지켜준 한 신발가게가 있었다. 아이들이 신발이 필요하다고 조를 때,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찾아가던 '다이히만'이라는 가게였다. 이곳에서는 다른 곳에서 한 켤레의 신발만 살 수 있는 돈으로 질 좋은 신발을 두 켤레나 자녀에게 선심 쓰듯 사줄 수 있었다. 다이히만은 우리 가족에게 참 좋은 신발가게였고, 우리는 20년이 다 되도록 다이히만의 장기고객이 되었다.


가게의 주인은 '하인츠 호르스트 다이히만(Heinz-Horst Deichmann)'이란 사람이다. 그분은 지난 2014년에 88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부모님에게 가게를 물려받아 사업을 시작했고, 모든 사람에게 품질 좋은 신발을 값싸게 공급하겠다는 원칙으로 가게를 운영했다. 다이히만 신발가게는 독일에서 크게 번창하여 세계적인 신발가게가 되었다. 다이히만은 1977년에 '말씀과 행동(Wortuntat)'이라는 선교 봉사기관을 조직하여 인도, 탄자니아, 몰도바, 그리스, 독일 등에서 교육과 의료 선교를 통해 20만 명이 넘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기도 했다.


그런 그도 불미스러운 의혹을 받은 적이 있었다. 본인이 세운 선교단체를 통해 해외에 자금을 유출한다는 의혹이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현지까지 가서 세무조사를 한 결과, 다이히만은 정말로 정직하고 바른 기업인으로서 어려운 지역의 사람들을 돌보며 선교적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드러나게 되었다. 다이히만과 그의 경영자 가족은 수년 동안 선교단체 '말씀과 행위'를 통해서 난민을 위한 긴급구호에 백만 유로를 지원했고, 이라크 난민촌·그리스의 아테네·그리스 섬 레스보스에서 긴급하게 요청한 겨울나기 주택·샤워장·세탁실·공동우물 등을 설치해 주었다. 또한 생필품과 의료 진료, 무료급식 등을 공급하였다.


다이히만의 본사가 있는 에센(Essen)에는 60명 정원의 언어·직업훈련원이 운영되어 3단계에 걸친 언어훈련과 도색 작업, 원예, 농사, 집안일 등의 직업훈련을 6개월 과정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젊은 난민들이 새로운 문화에 올바르게 정착하고 작업현장에서 그들의 진로와 직업을 찾아가도록 도와주고 있다.


다이히만은 자신의 물질을 사사로이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사용한다고 고백한다(2008년 인터뷰). 그는 또한 "나는 나에게 어떤 좋은 것들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부자가 아니라, 나의 돈을 하나님의 일에 지출하기 위한 부자"라고 고백하였다. 그는 기업가의 삶보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더 가치 있게 여겼다.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신발을 팔았느냐?"는 질문보다, "복음을 얼마나 많이 전파했느냐?"라는 질문을 받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다이히만 신발기업은 다이히만이 생존했던 2013년도 한해에만 유럽 23개국과 미국에서 1억 6천 7백만 켤레의 신발을 팔았다. 2014년에는 49억 유로라는 최고 실적을 갱신하기도 했다. 다이히만의 경건한 삶의 자세와 청렴한 기업가 정신, 그리고 세계를 섬기는 실천적인 삶은 다이히만 신발기업을 이어받은 아들 하인리히 다이히만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대를 이어 신앙을 지키며 사회에 사랑을 실천하는 다이히만의 가족과 기업은 세계의 모든 기업인들과 신앙인들이 본받아야 할 모델이 되었다. 신실한 기업가, 헌신된 신앙인들을 통해 우리의 이웃으로 찾아온 이주민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


이성춘 선교사 _ 바울선교회 국제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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