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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민족주의와 하나님의 보편주의



한 민족이 한 국가를 이룬다는 근대 국민국가의 개념과는 달리,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양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강대국의 편의에 따라 국가의 영토가 그어지는 일이 빈번했다. 그 결과 한 국가 안에 내재한 인종, 민족, 부족 등의 갈등은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민족적 요인들이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진행되어 온 세계화는 신자유주의라는 시대정신의 산물로써, 코로나19 이전까지 지구촌에 수많은 이주민을 양산해왔다.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서로 간의 담을 허물어오던 흐름에서 다시 국가 간의 관계를 재편하며, 각자의 이익에서 어느 나라와 담을 쌓고 허물 것인지를 저울질하고 있다.


요나는 앗시리아의 제국주의적 행패에 매우 큰 상처를 받고 하나님께서 앗시리아를 심판해야 한다고 믿었다. 요나의 하나님은 철저하게 유다의 하나님이며, 제국주의자 앗시리아의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요나는 골수 유다 민족주의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에게 앗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에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선포해야 하는 것이 예언자의 임무였고, 명령의 거부는 예언자로서의 직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요나는 자신의 소신이 너무나 강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기 위하여 니느웨와 반대 방향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하나님의 강권에 의해 다시 소명을 받고 수용한다. 요나는 니느웨에서 불성실하게 선포했지만, 요나의 바램과는 달리 니느웨에서 큰 회개가 일어났다. 그것이 못마땅했던 요나는 죽으려 하기까지 하며 하나님의 공의에 항의한다. 이에 하나님은 요나에게 다음의 질문을 하시면서 요나서는 끝난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 4:11)


피해국인 유다의 민족주의자 요나가 느낀 분노를 탓할 수는 없다. 제국주의 행패의 희생을 경험했고 경험하고 있는 우리는 요나의 분노에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그 분노와 함께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속성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속성은 사람과 가축까지 ‘아끼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그 속성은 모든 생명체에 대한 것이다. 사람이냐 동물이냐를 가리지 않으며, 민족이나 인종을 가리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속성은 아들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이 땅의 마구간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주민 사역의 근본정신은 이 땅의 모든 생명체를 향한 하나님의 ‘아끼는 마음’이다.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자기 이익에 따라 담을 쌓으려는 그 시도를 꺾을 수 있을 것이다.


유윤종 교수 • 평택대학교 구약학 교수, 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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