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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학생 사역은 롱텀 사역, 20~40년 내다보고 해야”

최종 수정일: 3월 13일


[피플스토리] 김학수 목사 탐방 인터뷰»


필리핀, 중국, 네팔, 파키스탄, 인도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인데 즈러 영어권 쪽 신학생들이 신학대학교 가려고 들어온 학생들이에요. 나중에 목회자가 되고 또 나중에 어쩌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서 교회를 세우고 그럴거에요. 이 학생들의 메디컬, 파이낸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돕고 있어요. 교회를 총동원해서요…


서부 교회에서 목사님이 지금 영어 예배를 하고 계시다고 하는데 그 영어 예배를 맡게 되신 계기는 어떻게 되시는지 좀 여쭤볼게요.


김학수 목사(이하 김 목사): 제가 좀 처음부터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또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신 걸로 믿고 제가 받아들였어요.

우리 집 앞에 교회가 있는데 제 아내와 딸이 먼저 다니기 시작했어요. 저는 다른 사역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영어 예배 담당 목사님이 몸이 안 좋으셔서 떠나시게 됐는데, 임시라도 도와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어요. 그냥 그렇게 시작이 됐어요. 그래서 얼떨떨하게 그냥 시작하게 된 거죠. (웃음)


선교단체 선교회 일을 하셨다고 하는데 어떤 일인가요?


김 목사: 저희 부모님은 아프리카 스와질란드에서 1985년부터 사역을 하시는데 한국에서 네트워킹이나 또 펀드레이징 하는 것이나 또 부모님이 필요하신 것을 준비해서 보내드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85년도 제가 10살 때 아프리카를 가게 됐고요. 19살 때 미국 대학을 들어가면서 그 후로 20년은 미국에서 살았습니다. 저는 아프리카 시민권자예요. 한국 시민권이 없고요.


한국 사람이라기보다는 아프리카의 더 정체성이 더 있으실 테고, 미국에서도 20년을 살았으면 이주민으로써 한국에 오셔서 이주민 사역을 하시는 분이 되셨군요.


김 목사: 이주민 사역은 제가 생각지도 안 했는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네요. 저는 그냥 감사로 받아들이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주민으로서 이주민 사역을 하시는 정체성은 어떤것일까요? 한국문화가 어떻게 이해 되시나요?


김 목사: 완벽하게 이해는 안 되고요 그래도 그냥 그냥 눈치 보면서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외국에 오래 있다 보면 여기도 집이 아닌 것 같고, 저기도 집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을 많이 해보게 되다보니 저 같은 경우에는 빨리 그 상황의 컬쳐에 적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적응력이 많이 생겨서 불편한 점은 없어요. 이제는 한국도 너무 좋고, 또 아프리카 가면 아프리카도 좋고, 미국가면 미국도 좋고 그래요


서부교회에서는 사역을 소개해주세요.


김 목사: 필리핀, 중국, 네팔, 파키스탄, 인도 여러나라에서 온 학생들인데 주로 영어권 쪽 신학생들로서 신학대학교 가려고 들어온 경우에요. 그들이 나중에 목회자가 되고 또 나중에 어쩌면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서 교회를 세우고 그럴거에요. 이런 학생들의 메디컬, 파이낸셜 문제를 해결하는데 여러 네트워크를 활용해 학생들을 돕고 있어요. 교회를 총동원해서요. 이들은 일단 한국어도 안되니 자신을 의사를 표현 못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해요. 그래서 사실 유학생 사역은 롱텀 사역이죠. 20년, 40년 내다보고 하는 사역이라고 생각되요.


코로나로 인해 귀국한 선교사님들께 이주민 사역으로의 전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은?


김 목사: 그분들이 20년 최소 20년 정도 그 이상으로 외국에 있다보면 자녀들은 이미 다 성장을 하고, 부모와 다른 나라에 살고, 부모님들은 선교지 계시고 이런 형태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선교사님들이 나이가 많이 드셨죠. 저의 부모님도 아프리카에서 너무나 말할수 없이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200개 교회를 건축하고, 고아원부터 신학교 2개, 의과대학교를 설립하셨어요. 개인적으로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아프리카 국적으로 살면서 의료 혜택도 전혀 못받는 현재 상황이지만요.

아프리카 신학교 운영하는 돈이 엄청 들지만 신학생 학비도 안 내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학교에 농장이 있는데 어느 은퇴하신 80대 목사님이 선교사로 오셔서 3천 그루의 나무를 심으셨어요. 마카다미아 나무를 심어주시고, 그냥 떠나셨어요.기증하신 것이죠. 또 그 후로 다른 젊은 선교사님이 들어와서 마카다미아 나무를 이제 가공 할 수 있는 공장을 세워주셨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좋으신 선교사님들 계속 보내 주신 것이에요. 그러니 굉장히 감사할 일이 많죠. 이렇게 계속 네트워킹을 통해 나내태고, 보여주시는 일을 MK(선교사 자녀들) 젊은 형제 자매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믿어요.

저도 네트워킹이 너무나 감사한 게 많은 게 제가 잘한 것보다도 저희 부모님이 연결된 게 너무 많아요. 그래서 저희 부모님들 통해서 여러 분들을 만나게 되고, 여러 사역을 꿈꿀 수도 있게 되고… 그게 저는 항상 기회라고 생각해요. 제가 어쨌든 귀국한 이주민 선교사로서 국내 이주민 사역을 전담하시는 분들한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의 어려움을 어려움이라 인정하지만 꿈을 꾸시라는 말씀을 좀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이팅이라는 키워드를 붙잡고 끝까지 분투 승리 하시길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승혜 기자 • seunghye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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