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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사회 현장에 대한 유감


디아스포라신문은 정기적으로 한국이주민선교연합회(KIMA)의 연구보고서 <국내 이주민선교 기반 구축을 위한 대상별 선교전략 개발> 본문을 발췌하여 연재하고자 한다. 본고는 1장 '연구의 배경과 목적'에서 '이주민 선교의 선교신학적 당위성과 선교전략 기반구축의 필요성' 내용을 수정·요약한 글이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산업화 과정이 일기 시작하던 60~70년대에 걸쳐 저학력·저연령·저소득층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다시피 했다. 이들 노동자에게는 절대빈곤의 상태만 벗어나게 해준다면 노동하겠다는 의지의 일반화가 그들 실존적 정체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노동임금의 상승과 인력의 고갈상태는 노동운동의 활성과 함께 산업노동계에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였다. 이와 더불어 아시아·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경제시장의 통합현상이 서서히 불거지면서 제3세계 노동자들의 이주가 한국경제에 대해서는 하나의 구조적 해결책으로, 인력 송출국 차원에서는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더 나은 경제적 기대와 개인적 희망의 실현으로써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세계적 추세로 이어졌다.


이제 한국 산업현장에서의 외국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산업 발달 초창기의 자국 노동자들을 대신하여 저임금·3D·저소득층의 새로운 대명사로 떠올랐다. 외국 이주노동자들 중 다수가 자국에서 교사 또는 공무원 출신 등의 고학력 소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더 나은 노동조건과 경제적 기대를 자국이 아닌 타국에서 실현하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하나의 획일적 집단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들이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친구로, 혹은 적으로 우리 문화와 삶 속에 깊이 관여되리란 것을 누구도 의심할 수 없으며 의심해서도 안 된다.


독일의 경우 양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강압과 자의에 의해 여러 형태로 밀려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이 60년에 가까운 정착 역사를 써 내려갔지만, 이들은 여전히 독일사회의 큰 사회문제로 남아있었다. 결국 이들은 여러 면에서 독일의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제공자 역할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 자국에서 의사·교사·공무원 등 지식계층의 구성원이었더라도, 독일사회에서는 단순 노동자로 전락되고 취급받았다. 또한 일반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재사회화되는 데 유입될 수 없었다.


이제 이들은 어느새 독일사회 구성원으로 유입되고, 거리에서 걸인과 범죄와 값싼 섹스상대자로서 그 사회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이 상호 간의 관계는 어느 모로 보나 진지한 신뢰를 쌓기보다는 이주노동자를 활용도 측면에서 바라보는 관계로 발전하기 쉽다. 자녀를 비롯한 독일인 다음세대들은 이러한 관계의 악순환에 그리 명쾌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이주노동자들과의 공동의 역사로 돌입 및 발전해 가고 있다. 이주자들은 독일 가정의 장모, 장인, 아내, 남편으로 뒤섞여 독일사회에 편입되면서 더 많은 쓰라린 경험들, 예컨대 심리적이고 종교적인 문제까지 포함한 인간 본성 차원의 문제를 겪으며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복지 구조와 정책 면에서 차등을 두고 이주노동자들을 3등 시민으로 제한해 왔던 자국민의 몫으로 온전히 남게 되었다.


사랑과 신뢰가 아닌 활용도에 맞춘 방식으로 사회에 고착된 이주노동자들이 서서히 우리 사회의 가족으로, 시민으로 되돌려지고 있다. 여전히 하나의 지속적인 사회문제로 인식되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사회문제였던 것이 아니다. 본토인이 이주노동자의 실존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를 사회문제성을 내포한 인간으로 학습하고 그러한 사회로 발전해 온 데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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